연말이고 해서 집안 대청소 중이다. 나중에 하자고 미뤄놨더니 새로운 것들에게 자리가 밀려 물건들이 빈 구석 이곳저곳에 숨겨져 있다.
하나씩 꺼내보면서 과감히 버리고 있다.
가장 자주쓰는 물건들은 제일 가까운 곳에 배치하고,
당장 필요없으나 추억이 있는 필요한 물건들은 선별해서 박스나 바인더에 보관하고,
혹시나 하고 보관하고 있었던 제품 박스,설명서 등,
각종 영수증 모음,
고지서, 구식이 되어버린 옛날 책들…과감히 버렸다. 기분이 상쾌하면서 뭔가 새로운 마음이 든다. 책상도 재배치 하고 바닥 청소한 후 차분히 앉아있으니 기분까지 상쾌하다.
그리고 두 가지 물건만이 지금 내 책상 위에 아직 남아있다. 그렇게 어제부터 꺼내고 집어넣고 버리고 남은 것들이다. 첫번째는 각종 메모지들.
손바닥만한 메모수첩,노트, 포스팃 그리고 뒷면 이용한다고 오려놓은 이면지들…
이면지말고는 모두 새것이라 선뜻 쓰레기통으로 던지기엔 괜히 죄스러운 마음이 있고,
이면지도 비록 사용했던 것이지만 한 쪽이 깨끗한 채 버리기엔 역시 편치 않다.
예전에야 메모장 들고 다니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담아두는 뱅크역할을 했겠지만은 요즘같이 메모뿐 아니라 음성,
화상 촬영까지 되는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다니니 당연히 필요없는 물건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아직 결정을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낭비하면 죄받는다고 귀가 따갑도록 교육받은 어릴적 탓으로만 돌리기엔 내 마음이 깨운치 않다.
모든것이 예전에 비해 풍족한 세상이어서 그렇다고 자위하기엔 이런 별거 아닌것도 소중할 수 있는 나 아닌 많은 사람들이 지구상에 많이 있다는 불편한 진실때문인가.
어쩌면 이 메모지처럼 분명 쓸모는 있는데 더 편리한 것에 밀리는 수모를 지켜주고 싶기 때문일까. 아님 끝까지 남아서 그 쓸모를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오기때문인가. 마치 지금 나의 모습이 이 메모지의 운명과 조금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번째 물건은 각종 필기도구들이다. 구입한것,
선물받은것,출처를 알 수 없는 크기도 높이도 모양도 다양하다. 아무리 잡아도 두 자루 이상을 사용하지 않는데 수십자루가 연필통에 꽂혀있는게 미안했다. 하지만 언젠가 사용할 수 있으니 괜찮아라고 위로하면서 메모지 한 장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한 자루씩 잡고 써본다.
잘 써지는 것은 물론 합격,
그리고 잘 안써지는 것은 불합격.
그런데 한참을 끄적끄적하다보니 겉보기엔 싸구려 같이 보여도 쉽고 깨끗하게 써지는 볼펜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비교적 고가로 보이는 펜이어도 잡기에 불편하거나 잘 안써지는것이 있었다. 합격 불합격의 기준은 겉모양이 아니라 얼마나 사용하기 편하고 잘 써지는 볼펜인가 아닌가 하는것이라는 사실.
그동안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펜통을 차지하고 있었던 놈들은 죄다 이 기회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나도 하나님 앞에서 쓰기에 편하고 잘 써지는 그런 볼펜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