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대로 나는 한 주 40시간 일하는 버스운전사다.토요일은 쉬니까 주중 평균 하루에 8시간씩 5일을 일한다.
각자 선택한 스케쥴에 따라 운전하는데 내 스케쥴은 현재 오전 5시48분부터 오후12시7분, 집에와서 점심먹고 쉬었다가, 오후3시23분부터 오후7시10분까지 하고 집에와서 저녁먹는다. 근무시간은 10시간이 조금넘는다. 화요일은 운전이 없으므로 결국은 1주에 4일만 일하는 셈이다.
하루에 10시간 운전이 결코 적은양이 아니지만 주중 하루를 쉬고 또 매일 집에와서 우리 귀염둥이와 점심 같이 먹고 산책까지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뿐더러 저녁식사도 그렇게 늦지 않게 가족이 다같이 한 상에 앉을 수 있어서 나름 만족하고 있는 스케쥴이다.
한 번 정해진 스케쥴로 4~5개월 운전하다가 어느날을 기점으로 모든 운전자가 모여 다시 선택하는 날이 온다. 우리는 'pick day" 라고 부른다. 새로운 스케쥴을 만나게 되면 이미 익숙해진 스케쥴에서 빠져나오는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pick day가 다가오면 모두들 게시된 스케쥴에 초집중하게 된다.
이번 스케쥴은 모두 100개 가까이 된다. 메트로 실버라인이 새로 개통되면서 노선이 신설되어 전보다 20개 정도 늘어났다.
스케쥴은 크게 두 종류이다. 하나는 'straight'
말 그대로 8시간 혹은 10시간을 계속 운전하는거다. 길게 운전해서 피곤하기는 하지만 하루 중 오전이든지 오후든지 자유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기때문에 대부분 운전자들이 선호하는 스케쥴이다.
나머지는 'swing' 4시간 정도 운전하고 난 후 몇시간 쉬었다가 또 4시간 정도 운전하는 스케쥴이다. 상대적으로 짧게 운전해서 힘은 덜 들지만 중간시간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면 하루 온종일 묶일 수 밖에 없는 스케쥴이다. 집이 먼 사람은 아예 회사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운전자들끼리는 보통 straight를 선택하면 축하한다고 하고, swing을 택하면 힘내라고 위로한다.ㅎㅎ
스케쥴은 각양각색이다. 같은 straight라도 오전 6시정도 시작해서 오후2시정도 끝나는것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강남 압구정 땅같은 straight이다. 그러나 오전4시에서 12시에 끝난다면 호불호가 갈리기 시작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새벽에 일어나는것을 즐기는 사람은 별로 없기때문이다. 시작시간이 4시이니 준비하고 나오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1시간정도는 족히 더 일찍 일어나야되니 말이다.
반대로 오후4시에서 자정까지 하는 straight도 있다. 이 역시 비슷한 반응들이 일어난다.
따라서 시작하는 시간이 언제인지, 끝나는 시간이 언제인지, 중간에 쉬는 시간은 몇시간인지, 막히는 노선인지, 손님이 많은지 적은지, 컴플레인이 많은 지역인지 아닌지, 10시간씩 해서 4일만 하는지..등등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서 스케쥴을 택하게 마련이다.
스케쥴 선택은 당연 고참 순이다. seniority 1번은 100개 가까운 스케쥴에서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걸 고르면 된다. 구십 몇번쯤 되면 고르고말고 할것도 없다. 남들 고르고 고르다 남은 것 하나 걸리게 된다. 그러니 운전할때는 그냥 그냥 똑같이 보여도 pick day 때만큼은 한자리수 번호를 달고 있는 사람에게는 천사의 후광을 입은듯 위대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 저의 seniority는 몇 번일까요...(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