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와 샴푸를 챙겨온다고 하고선 까맣게 잊고있었다. 이것저것 꼼꼼히 점검했는데도 이러니 쯧쯧...온몸이 땀으로 범벅될텐데 맹물로 샤워만 한다 생각하니 왠지 찜찜. 하긴 샤워실이라도 있어 자전거 출근길을 시도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위안... 사실 자전거 출근길은 준비작업이 좀 필요했다. 짐을 줄여야 되니 유니폼 여벌을 미리 라커에 넣어두어야 한다. 모자,구두와 안전조끼까지. 책이니 방석이니 등등 넣어다니는 백팩도 잊지 말아야하고... 집에서 출발할때는 다른 백팩에 도시락을 챙겨야 한다. 갈아입을 속옷,양말,그리고 수건도. 다시 돌아올 때는 꼭같이 반대로 차근차근 세팅을 해놔야 다음 출근때 지장이 없다.
주택가 뒷편 산책로로 들어섰다. 29번에 인도가 없어 선택했는데 잘했다. 나무그늘로 덮혀있어 시원하고 새소리, 벌레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바닥의 나무가지들이 자전거 바퀴에 밟히면서 타닥타닥 소리를 낸다. 듣기좋다. 시원하게 땀을 식히면서 산책로를 나오니 드디어 최종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1.5마일 정도 계속 밟아야 한다. 다시 최저단으로 기어를 바꾸고 땅바닥 쳐다보며 다람쥐 체바퀴돌듯이 페달링 시작. 힘껏 돌리는거에 비해 전진하는 거리는 미미하다. 차타고 지나다니면서 바이커들이 한결같이 고개 쳐박고 올라가는 모습에 힘들어서 그러는줄 알았다. 그러나 해보니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반 정도 올라왔겠다 싶어얼마나 남았나하고 고개를 쳐드는 순간 두가지에 깜짝놀랬다. 처음과 별만 좁혀지지 않은 고지...그리고 내가 올라왔던 거리가 얼마나 짦은지.. 급좌절에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아하~ 이유가 있었군...쩝쩝 멀리 보는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닌듯... 심기일전해서 다시 쳐박고 헉헉 소리내며 올라간다. 인기척에 살짝 고개를 드니 미니트럭 한대가 나를 막아서듯 서있다. 큰길로 진입하려고 기다리는 중인것 같았다. 불편했지만 어쩌랴 큰차가 우선인걸. 그리고 무엇보다 헥헥거리느라 따지고 뭐 그럴 겨를이 없었다. 삥 돌아서 나오는데 차탄 사람이 내 뒤에대고 한마디 한다. "쏘리 어바웃 댓" 그 세단어가 어찌나 그렇게 청명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모든 영어가 이렇게 들렸으면 좋겠다.음냐음냐. 백인이었는데 그 인사성하나는 배울만했다.
세상에 끝이 없는 길이 없다고 했던가. 드디어 언덕에 올라섰다. 휴...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와 눈가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눈썹을 쓰윽 훔치니 땀이 제법 만져진다. 남들이 눈썹 진하다고 부러워하는데 오늘에야 그 효과(?)를 보는듯 하다. 우하하...어쩐지 눈 안으로는 땀이 덜 들어간다 했다. 짙고 숱많은 눈썹덕을 제대로 경험했다.ㅋㅋㅋ.
회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평지. 제대로다. 자전거 타는 진정한 기쁨은 쉬운 내리막길에서가 아닌것 같다.
힘빠지게 하는 오르막길은 더더욱 아니고.... 평지다. 페달링하는 기쁨. 일전에 자전거 매니아가 쓴 책에서 한 말이 비로서 실감난다. 밟으면 밟는 그대로 전진할 때 다리와 몸을 통해서 느껴지는 그 희열. 조금의 경사도 없는 완전한 평지에서 느끼는 자전거 타기의 진수라고 표현했던... 아.. 기쁘다...
회사 자전거 랙에 세워놓고 시계를 보니 10시25분... 50분 걸렸다. 예상대로군..
해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했다. 헬멧 끈을 풀어헤친채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지나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신기한듯 한마디씩 내 귀에 안긴다.ㅎㅎㅎ 끝.
** 무릎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정빈씨...얼른 나아서 쌩쌩 자건거도 타고 운동도 함께 하는 그날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