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콘역. 오늘도 승객들이 꽉꽉 찼다. 좌석이 39개니 서있는 사람들까지 대충 세어도 50명이 넘었다. 395를 지나 로컬길로 들어섰는데 차들이 엄청 밀린다. "띵똥" 하차벨 소리는, 빨리 가서 쉬고 싶은 내 마음 속삭임을 여지없이 깔아 뭉갠다. 밀리는 도로에서 정류장을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가 쉽지않다. 백미러로 쌩쌩 지나가는 차들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보다가 약간 틈이라도 날라치면 얼른 핸들을 돌려 앞바퀴를 들이민다. 미국 사람들은 비교적 양보를 잘 한다고는 하지만 역시 막히면 사람들은 다 비슷해지는가보다. 게다가 승객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사람씩 내린다. 한 블럭 가서 "띵똥" 정류장 들어가서 내려주고 기다렸다가 다시 합류, "띵똥" 들어가고 내려주고 다시 합류. "띵똥" 들어가고 내려주고 다시 합류.....
시간은 시간대로 늦어지고, 다리는 다리대로 아프고, 이런 내 원망은 고스란히 죄없는 승객들에게로 향한다. 한참을 그렇게 승객들 원망도 하다가, 양보 안하는 차들을 째려보기도 하다가, 빨리 안바뀌는 신호등을 원망하다가 뭐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DC에서 운전했던 일들이 스쳐지나간다.
불과 넉 달도 안되었다. 초반 두 건의 사고때문에 수퍼바이저에게 며칠을 불려다녔던 일, 경위서 사인하던 일, 하루 suspension 당한 일, 본부로 끌려가 알콜 테스트 받았던 일, 결과 나오는 3일 동안 다른 운전사 버스타고 하루종일 시달리다 돌아온 일하며, 그외에도 시간 늦을까봐 항상 맘 졸이며 출근하던 일. 주일 새벽4시에 돌아와 4시간 자고 교회 갔던 일들 등등....나로서는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들도 다 지나갔다. 오히려 차가 좀 밀린다고, 승객들이 많다고, 다른 차들이 양보안한다고 원망하는 일쯤은 그에 비하면 얘기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 그 어려운 시기도 이겨냈는데 이까짓 체증 쯤이야' 슬며시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그때는 그게 뭐랄까 감당이 되었다. 견딜만 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는 아프고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때는 버틸 수 있었다. 그 때는 정말 몰랐다. 왜 그런지를. 요즘 와서 생각하니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신게 느껴진다.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의 진리가 깨달아지는 순간이다.
전인권씨의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노래가사 중에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대목이 있다. 가요지만 공감이 되는 가사여서 좋아한다.
늘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떤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할까 생각한다.
그러면 결론은 으레 간단하면서 소박하다.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있고 나는 그것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라도...